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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는 이때, 인정사정 볼 것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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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동 등 보수언론 ‘기아차 입사비리’ 빌미 노동운동 뿌리 흔들기 시도
  
기아자동차 노조 금품수수 사건이 일파만파로 퍼지면서 관련 언론보도도 봇물을 이루고 있다. 지난 21일 성명을 통해 유감의 뜻을 표했던 민주노총이 철저한 진상조사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도 “일부 언론에서 노조간부가 개입되어 있다고 노조에 대한 공격의 호재로 삼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우려했지만, 민주노총의 우려에도 현실은 노조 비난기사로 넘쳐나고 있다.  

조중동과 문화 등 보수 종합일간지와 매일경제 및 한국경제 등 경제일간지는 광주지검의 수사착수 사실이 알려진 지난 19일 이후 서로 짠 것처럼 2·3일 간격을 두고 두 개씩의 사설을 실었다. 각 신문의 사설제목은 다음과 같다.
  
조선일보 : ‘대기업 노조가 여기까지 타락했다는 말인가’(22일), ‘노조는 협박하고, 회사는 매수하고’(24일)  
중앙일보 : ‘노조의 타락, 경영진 책임이 더 크다’(22일), ‘대기업 노조 타락, 차제에 뿌리 뽑아라’(25일)
동아일보 : ‘대기업 노조의 부도덕한 취업 장사’(22일), ‘노조의 경영개입 관행 고쳐야한다’  (25일)
문화일보 : ‘취업브로커 노릇한 노동조합 간부’(21일), ‘노·사·정, 상생과 비리의 두 얼굴’(24일)
한국경제 : ‘개탄스러운 노조의 취업 비리’(22일), ‘기아車노조만의 문제일까’(24일)
매일경제 : ‘노조 간부가 취업 브로커라니’(22일), ‘취업 돈거래 뿌리 뽑는 계기로’(24일)  

노조의 도덕적 흠결을 비판하는 데 초점을 맞춘 한겨레(‘기아차 비리, 노조 도덕성 성찰 계기로’, 22일)와 경향신문(‘노조의 생명은 도덕성이다’, 24일)과는 달리, 이들 신문의 사설에선 일정한 경향성이 엿보인다.

노조간부의 비리의혹이 사실로 드러나기 시작한 21일과 22일에 게재된 첫 번째 사설은 사건의 ‘충격’ 그 자체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반면, 2·3일 후에 나온 두 번째 사설은 노조의 역할 및 존재이유 등에 대한 파상공세적 성격을 띤다.

노동조합에 대해 평소 극도로 부정적인 시각을 견지해 오던 신문들이 사건이 알려지자 첫 번째 사설을 통해 즉각적 반응을 보인 후, 사건 내막이 점차 드러나면서 이번 사건을 노조를 거세게 압박할 수 있는 ‘호기’로 판단, 노동운동의 ‘근본’까지 건드리는 두 번째 사설을 쓴 것으로 보인다.    

이들 신문의 첫 번째 사설은 주로 노조의 상처 난 도덕성을 근거로 노동조합을 거세게 비난한다.

조선일보는 “남들 앞에 나서서는 비정규직을 보호해야 한다고 입 아프게 떠들어 왔던 것이 대기업 노조”라며 “겉과 속이 달라도 이렇게 다를 수가 없다”고 비수를 날렸다(‘대기업노조가 여기까지 타락했다는 말인가’, 22일). 조선일보는 또한 “하청업체와 비정규직을 찍어 눌러서 자기 배를 채우고 있으니 ‘권력노조’ ‘귀족노조’라는 말을 듣는 것”이라 질타했다.    

중앙일보 사설 ‘노조의 타락, 경영진 책임이 더 크다’(22일)도 “노조가 할 일은 채용된 계약직의 신분과 권익을 보호하는 것이다. 그런데 비정규 생산직을 상대로 취업장사를 할 정도로 노조가 타락했으니 노동 귀족을 넘어 동료의 피를 빠는 거머리나 다름없다”며 노조의 이중성을 비난했다.

노동조합의 권력화·비대화도 도마 위에 올랐다. “단순한 개인비리로 볼 일이 아니라, 노조 간부가 직원 채용에 ‘감 놔라, 대추 놔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노조 권한이 비대해진 데에 이 사건의 근원이 있다”(‘대기업 노조의 부도덕한 취업장사’, 22일 동아)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기아차는 노조 전임자만 74명이라고 한다. 노조위원장이 되면 기아차가 만드는 최고급 승용차인 오피러스를 타고 다닌다”며 “노조 집행부 선거가 ‘작은 국회의원 선거’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과열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 비판했다(‘대기업노조가 여기까지 타락했다는 말인가’, 22일).

이렇듯 노조의 도덕성을 힐난하던 신문들은 두 번째 사설에서 총구를 노동조합과 노동운동 그 ‘자체’에 맞췄다. 도덕적 문제를 빌미로, 노조의 당연한 권리이자 존재이유로 여겨지는 부분들까지 ‘과감히’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노조는 협박하고, 회사는 매수하고’(조선 24일) : “그 탓에 인사와 공장이전·신제품 도입 같은 경영전략에 대해서까지 노조가 입김을 행사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래서 겉으로는 ‘몇 년째 무분규·무파업’을 선전하고 있지만 걸핏하면 파업을 들이대면서 경영에 간섭하는 노조와 회사의 장기계획을 희생하면서까지 노조에 끌려가는 회사측의 무사안일로 인해서 경쟁력이 무너져 가고 있는 기업이 늘고 있는 게 우리 경제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대기업 노조 타락, 차제에 뿌리 뽑아라’(중앙 25일) : “신규사원 채용 시 노조 동의를 구하거나 노사 동수의 인사위원회로 해고나 징계권을 제약하는 기업이 적지 않다. 대기업 노조의 횡포는 이미 도를 넘었다. 견제나 감시받지 않는 권력은 썩게 마련이다.”

‘노조의 경영개입 관행 고쳐야한다’(동아 25일) : “노동관련법에 명시돼 있듯이 근로조건의 유지개선, 근로자의 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목적으로 조직된 노조가 그 범위를 벗어나 쟁의행위를 하는 것은 위법이다. (…) 일부 대기업에서는 채용과 인력배치는 물론이고 생산혁신 활동, 해외투자까지도 노조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생산라인을 멈추겠다고 위협해 회사를 굴복시켜 부당한 경영개입이 버젓이 단체협약으로 작성된다. 심지어 이익금 일부를 기금으로 조성해 사회공헌활동에 나서라는 압력을 넣기도 한다. 사원 징계도 노조 동의 없이는 불가능하다.”

‘노·사·정, 상생과 비리의 두 얼굴’(문화 24일) : “기아차 경우만 해도 공장의 이전·통폐합은 물론이고 생산라인 교체, 신기술 도입에 따라 인력을 재배치할 때는 노조의 동의를 얻어야만 한다. 다른 대기업 노사관계도 별반 다를 바 없다. 변화하는 외부여건에 신속 대응해야 할 경영권이 노조의 간섭에 좌지우지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기아차 광주공장 노조간부의 인사비리로 불거진 이번 사태가 노조 공격에 좋은 명분을 제공하고 있는 가운데, 일부 언론들은 관련자 개인에 대한 비난을 넘어 노동운동의 근간을 흔드는 쪽으로 논조를 잡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문영 기자  2door0@labor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