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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3월, 노사정에 봄은 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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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노사관계 전망…2월 비정규법안 국회 처리가 최대 분수령, 곳곳 암초
  
2004년은 노사정의 각 주체들에게 향후 노동운동과 노사관계, 노동정책에 있어 중대한 구도 변화를 암시하는 한 해였다. 그러나 하반기로 접어들면서 주요 ‘변수’들은 과거의 대립적 ‘상수’들이 다시 압도하게 되면서 팽팽한 대결국면으로 다시 접어들게 되었다.


지난 해 노사관계의 흐름도

지난해 초반 노사정의 수장이 새 인물로 교체되면서 노사정간 대화 분위기 조성에 대한 기대를 모았다. 민주노총에서는 ‘교섭과 투쟁’의 병행을 강조한 이수호 집행부가 출범하고, 한국노총은 총선 참패의 후유증을 딛고 개혁성향의 이용득 위원장이 취임했다. 노동부 장관에는 진보적 학자 출신의 김대환 장관이 임명돼 김금수 노사정위원장, 신홍 중앙노동위원장과 정부 노동정책을 대표하는 ‘빅3’가 노동계와의 대화에 원만한 인물들로 포진하게 됐다. 2월에는 경총 회장으로 취임한 이수영 회장 역시 노동계와의 대화 필요성을 강조했고 취임 직후 역사상 처음으로 민주노총을 직접 방문하고, 이수호 위원장의 단식농성장까지 찾는 등 유연한 자세를 보였다.

한편 정치권의 경우 4.15 총선에서 대통령 탄핵을 주도했던 한나라당이 퇴각하고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과반의석을 확보했다. 민주노동당은 277만표(13.1%)의 지지를 얻어 지역구 2석을 포함, 모두 10석을 획득해 원내 제3당으로 부상함으로써 정치권은 물론 노사관계 구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임을 예고했다. 더구나 17개 국회는 초선의원 비율이 어느 때보다 많아 개혁입법에 대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이같은 희망적인 분위기와 보건의료노조의 파업 과정에서 나타났던 중노위 직권중재 보류 결정 등 순항 기류는 6월 중순 이후 현대차노조, 지하철노조, LG정유노조 등의 파업에 대한 대통령의 비난과 언론들의 악의적 보도, 직권중재-대화불응-손배청구 등이 이어지면서 노-사, 노-정 관계는 급속도로 냉각되었다.

더구나 정부의 비정규법안 제출은 불에 기름을 붓는 결정타로 작용, 총파업과 천막농성 등 노동계의 격렬한 저항을 초래했다. 뒤이는 공무원노조 파업에 대한 대량 중장계 강행은 노동부 장관 퇴진 요구로 번져 2004년말 노동정국을 걷잡을 수 없는 파탄 상태로 몰고 갔다.

그나마 비정규법안 국회 처리가 내년 2월로 연기되고 철도노조의 파업 직전 노사합의가 이뤄짐으로써 칼날같은 대치 정국에서 잠시 휴지기를 맞고 있는 상태이다.


비정규법안, 2005년에도 최대 분수령

새해에도 노동정국은 여전히 묵은 암초와 새로운 뇌관들로 살벌한 풍경을 이루고 있다.

당장 2월로 예정된 임시국회에서 비정규법안이 어떻게 처리될지가 향후 노동정국의 최대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앞서 ‘사회적 대화틀’ 참여 문제를 결정하게 될 민주노총 대의원대회(1월)와 한국노총 위원장 선거(2월)가 어떻게 결론날 것인지도 초미의 관심사다. 사회적 대화기구가 재구성되고 민주노총이 한국노총과 함께 참여할 경우, 비정규법안의 처리 시기와 내용은 재조정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결정과 무관하게 법안 처리가 강행될 경우 올 한해 노-정관계는 상당한 진통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실제로 정부 관계자들은 법안이 이미 국회로 넘어가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사회적 대화기구에서 이 문제를 다룬다 하더라도 “그 문제는 국회가 결정할 사항”이라고 보고 있다. 따라서 사회적 대화기구가 구성된다 하더라도 그 의의를 국회가 얼마나 존중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사회적 대화틀이 가동된다 하더라도 실제 논의 과정에서 험로가 예상된다. 이수봉 민주노총 교선실장은 “지금은 태풍의 눈에 접어든 상태로 더 큰 폭풍이 대기하고 있는 느낌”이라며 “정부가 분배없는 성장, 고용유연화 정책의 기본전략을 자체를 수정하지 않는 한 사회적 대화가 재개된다 하더라도 충돌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여기에 300인 이상 중소기업의 주5일제 시행(7월), 복수노조·전임자 문제, 노사관계 로드맵의 추진 방식 등도 하나같이 ‘뜨거운’ 감자들이다.

중소사업장 비중이 높은 한국노총의 경우 비정규법안 이외에 특히 전임자 임금 문제에 거의 사활을 걸 것으로 보인다.

정길오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전임자 문제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한국노총은 확실히 총파업으로 간다”며 “이것은 노동운동의 명운이 걸린 문제”라고 강조했다.

노사관계 로드맵의 경우에도 현재 노사정위에 계류돼 있는 상태인데, 대화기구 재편과 맞물려 처리방향도 다시 논의될 가능성이 있으나 정부가 무리한 일괄 처리를 시도할 경우 격렬한 반대에 부딪칠 것으로 보인다.


어려운 경제상황, 수출대기업도 ‘불안’ 조짐

이같은 제도 요인 외에 경제상황도 노사관계의 불안요인이다.

고유가와 환율불안에 따른 원자재가격 상승과 계속되는 경기침체와 내수부진, 사회 양극화, 빈곤층 증가 등 어두운 경제상황이 노동정국의 불안 요인을 가중시키고 있다. 그동안 비교적 무난하던 수출대기업이나 금융부문에서 경제상황 등을 이유로 임금억제, 비용절감, 감원, 구조조정 등을 밀어붙일 가능성이 있고, 이같은 기업들의 움직임이 법제도를 둘러싼 기존의 노사정 갈등을 증폭시킬 우려가 있다.

실제 코오롱, 금강화섬 등 현재 진행 중인 화섬업계의 구조조정을 둘러싼 갈등 이외에도 최근 들어 조선, 자동차, 금융, 통신 등 그동안 상승세를 구가했던 주요 업종에서 초긴축 경영 방침이 발표되는가 하면 정리해고, 명예퇴직 등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이동응 경총 상무는 “원자재 가격, 환율 불안 등으로 어려움을 겪게 될 기업들의 경우 구조조정의 필요성은 인정돼야 한다”며 “실업문제도 예상되지만 우선은 임금안정이 기본적으로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노동계는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산별교섭의 확대 발전, 정규직-비정규직간 격차 축소, 연대임금정책 등을 적극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김태현 민주노총 정책실장은 “경제여건을 감안할 때 올 임단협이 상당히 빡빡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럴수록 더욱 어려운 조건에 놓일 저임금 노동자들을 위한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관철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김 실장은 “민주노총은 앞으로 양극화 문제에 대한 민중적 대안을 제시하는 사회연대적 노동운동의 상을 구체화시키는데 적극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현 실장은 “산별교섭의 진전을 위해서는 사용자의 태도부터 달라져야 한다”며 “일체 대화에 응하지도 않고 대표단 구성 문제에도 손을 놓고 있다가 파업에 들어가고 나서야 협상에 임하는 태도를 고수하기 때문에 협상이 장기화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동응 경총 상무는 “산별교섭은 강제될 수가 없는 것인 만큼 사용자들이 긍정적인 인식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는 노동계가 산별교섭이 효율적인 협상이라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중복교섭, 중복파업 등 최근의 문제점이 산별교섭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낳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렇게 볼 때 임단협 시기가 되면 임금억제와 인력조정을 내세우는 사용자쪽과 고용안정·차별해소·연대임금을 주장하는 노동계의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금속, 보건, 금융 등 주요 산별노조의 교섭에서도 비정규직 문제가 역시 핵심적인 요구로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밖에 근골격계 질환 요양인정 기준을 둘러싼 재계와 노동계의 공방도 격화될 가능성이 있다. 조선, 철강, 자동차 등의 업종의 경우 열악한 노동조건을 견뎌온 생산직 노동자들의 경력년수가 20~30년에 이르고 있어, 근골격계 질환에 따른 산재요양 신청이 급증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으며, 노동계 역시 경영계가 이 문제를 놓고 산재노동자의 권리를 대폭 개악하는 방안을 밀어붙일 것이라고 경계하고 있어 팽팽한 긴장이 흐르고 있다.

2005년 3월, 봄은 올 것인가

끝으로 올해 노사정이 공통적으로 중시하고 있는 것은 국민의 여론이다. 실제 노동계는 지난해 주요 파업투쟁이 언론의 적대적 보도로 인해 여론이 왜곡되고 노조에 부정적으로 작용했던 사실을 뼈아프게 기억하고 있다.

경총이 얼마 전 개최한 세미나에서 이동응 상무는 “지난해 경영계의 가장 든든한 우군은 노동운동에 비판적인 국민 여론이었다”고 술회한 바 있다. 물론 그가 말하는 만큼 실제 국민 여론이 노동운동에 대해 부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노조에 대한 비판여론이 확산되고 있었던 것만은 사실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노사정은 올해 다양한 쟁점들을 놓고 갈등과 경쟁을 벌이면서 국민 여론을 획득하기 위한 노력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1~2월로 예정된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와 한국노총 임원 선거, 국회의 비정규법안 처리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따라 2005년의 춘삼월은 노사정에게 ‘진정한 봄’일수도 있고, ‘겨울의 연장’에 불과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박영삼 기자  yspark@labor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