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라인뉴스
임박한 파국…‘사회통합적 노사관계’ 총체적 균열 위기
| | 노동조합 | Hit 559

지하철노조 전국적 총파업 파괴력 얼마나 쎌까

오는 21일 예고된 서울지하철, 도시철도, 인천, 부산, 대구 등 궤도부문 5개 노조 공동파업이 파국으로 치달을 경우, 비교적 큰 충돌 없이 진행되고 있는 올해 노사관계 전반의 평화적 분위기를 해칠 뿐만 아니라 참여정부가 추진하려 했던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도 또 다시 늦춰져 근본적으로 흔들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필수공익사업장인 5개 지하철이 동시 파업에 돌입할 경우, 시민불편 등 사회적 파급력으로 정부는 직권중재에 대한 압력을 받을 것이며 이는 곧 불법파업으로 이어져 지도부 사법처리, 공권력 투입 등 노-사, 노-정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닫게 된다. 결국 올 상반기 어렵게 형성된 ‘대화와 타협’ 분위기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되며 노사정위 개편 방안 논의를 위해 노·사·정 대표자회의에 참여하고 있는 민주노총 지도부는 부담을 떠안게 된다. 현장이 첨예한 갈등을 겪고 있는데 지도부가 대화만 강조하고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각 공사별 교섭상황을 보면 핵심쟁점인 인력충원을 놓고 노사가 전혀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어 파업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정착되는 ‘대화와 타협’ 분위기, 그러나…

올 상반기 보건, 택시, 자동차노조, 금속노조 등 노동계 임단협 투쟁이 큰 갈등으로 확대되지 않고 차분히 마무리됐다. 산별파업까지 갔던 병원은 필수공익사업장인데도 직권중재 회부가 유보되면서 노사자율로 결국 사태를 해결했으며 택시도 정부의 일부 제도개선에 따라 투쟁이 확대되지 않았다.

금속노조 또한 전면파업까지 가지 않고 협상을 마쳤으며 현대차노조도 이전에 비해 조기 타결됐다. 특히 금속산업연맹과 한국자동차공업협회가 자동차산업 발전을 위한 ‘노사 공동협의체’를 구성하는 등 노사관계에 적잖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현재 금융노조 한미은행지부가 파업을 지속하고 있지만 로비 점거를 풀면서 공권력 투입 등 극한 상황은 넘겨 협상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으며 14일 예정된 보건의료노조 2차 시기집중 투쟁도 미 타결 지부들이 속속 합의를 이뤄내고 있어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있다. 물론 이들 노조의 파업이 계속 장기화될 경우 새로운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지만 예년에 비해 노사관계에 있어 더디지만 ‘대화와 타협’ 분위기가 정착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더구나 지난 5월말, 5년 만에 민주노총이 참여한 노·사·정 중앙단위 대화채널이 가동됐고 각 조직 대표자들은 사회적 대화기구인 노사정위원회의 개편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참여정부가 지난해 출범 직후부터 사회통합적 노사관계의 핵심을 사회적 대화기구로 보고 있었던 만큼, 민주노총의 참여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지점이다. 정부는 올해 안에 반드시 사회적 대화기구 구성 문제를 매듭짓겠다는 계획이다.

지하철, 지자체가 추가 변수로

상반기 노사관계에서 어렵게 ‘대화와 타협’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가운데 궤도 투쟁이 이 흐름을 이어 받을지에 관심이 집중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부정적인 견해가 우세하다.

우선 지하철 문제가 지자체 소관이라는 점이다. 부산교통공단을 제외한 4개 지하철은 예산 등 지방자치단체의 영향을 받고 있는 만큼, 교섭은 각 공사와 노조가 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힘은 지자체가 쥐고 있다. 특히 인력충원은 예산과 직결되는 문제로 지자체의 적극적인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면 공사의 선택폭은 제한적이다.

이처럼 지하철의 주무기관이 지자체라는 것은 앞서 해결된 병원, 택시 등과 다른 차이점이다. 노동부, 복지부, 건교부 등 중앙부처 소관인 병원, 택시 문제는 각각의 현안 문제와 함께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라는 정부 차원의 기조가 맞아 떨어지면서 ‘대화와 타협’의 원칙이 상당부분 반영됐다.

하지만 지자체의 자율과 독립성을 강조했던 참여정부로서는 지하철 노사관계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적다. 이와 관련, 노동부 관계자는 “서울시와 궤도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지만 결정권은 결국 자치단체에 있을 수밖에 없다”며 “정부는 노동위원회 등 조정 서비스 기능을 담당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한다.

특히 궤도부문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서울지하철 1~8호선은 이명박 서울시장이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에 달려 있다. 이 시장이 야권의 차기 대권 주자로도 거론되고 있는 상황에서 참여정부의 노동정책과 호흡을 맞출 이유가 별로 없다는 분석이 강하다. 오히려 정부의 ‘사회통합적 노사관계’와 다른 방향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이명박 시장은 상생을 주장하던 배일도 서울지하철 전 노조위원장(현 한나라당 국회의원) 시절에도 일방적인 정책추진으로 끊임없이 갈등을 겪는 등 노사관계에 있어 이해의 폭이 넓지 않다는 것이 주변의 대체적인 평가다.

노조와 사용자, 입장 차이도 ‘하늘과 땅’

5개 지하철 노사의 쟁점에 대한 입장 차이도 ‘하늘과 땅’이다. 가장 핵심 쟁점으로 부상한 인력충원을 놓고 보면 노조는 주5일제로 인해 7천여명(5개 공사 합산), 신규호선 개통에 따라 1,700여명 등 8,700여명의 신규 채용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공사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사측은 근무형태 개선 등으로 인원충원이 필요하지 않다고 지적하는 등 간극이 엄청나다.

노사간 입장 차이보다 더욱 큰 문제는 쟁점에 관한 객관적 자료가 없다는 점이다. 시민들의 안전과 직접 연결되는 지하철 노동자의 근무조건이 주5일제 시행으로 변경되는데도 노사 모두가 공감대를 이룰만한 객관적 근거가 전혀 없다는 것이 입장 차이를 좁히는데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지하철의 근무환경 변화는 노사 문제만이 아닌 만큼, 주무기관인 지자체의 준비 부족은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적자를 이유로 각 공사가 부분적으로 역무 민간위탁, 기술·차량 외주 용역화, 비정규직 확대 등을 추진하고 있는 것도 향후 구조조정 문제와 결부돼 있어 첨예한 쟁점이다.

또한 최근 엄청난 혼란을 초래하고 있는 대중교통체계 및 요금 개편 전면유보도 궤도노조들의 공통된 요구안이다. 이 밖에 정부가 공공부문 사업장에 휴가일수 조정, 임금보전을 뼈대로 한 주5일제 지침을 내린 것은 사용자의 선택 폭을 제한하고 있어, 교섭을 어렵게 하는 주요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노사·지자체 상황은 ‘최악’

노사가 첨예한 입장 차이로 공방을 거듭하고, 지자체는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지만 궤도 투쟁을 앞두고 노조도 지자체도 유리한 상황은 아니다. 인천, 부산, 대구지하철노조는 지난해 파업으로 조직 내부 피로도가 쌓인 상태이며 징계 등 파업 후유증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또한 대부분의 다른 사업장 임단협이 끝난 상태에서 휴가 기간에 파업에 돌입한다는 것은 궤도노조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한다.

특히 서울시의 경우 버스이용체계 개편으로 시민들이 엄청난 교통 혼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지하철까지 파업에 들어간다면 노조와 사용자, 서울시 모두에 대해 엄청난 비난이 쏟아질 게 뻔하다. 이명박 시장도 최근 버스체계개편, ‘서울시 봉헌’ 발언 등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만큼 지하철 파업으로 인한 책임론까지 듣게 될 경우 정치적 타격이 심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즉 노·사·정 모두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라는 의미다.

파업을 예고한 날짜가 불과 13일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노와 사, 지자체가 쟁점에 대한 입장 차이를 어떻게 좁혀 나갈지, 또한 중앙부처는 얼마나 효율적인 조정 서비스를 통해 파국을 막아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궤도부문에서 올 상반기 노사관계가 어떻게 마무리될지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때다.




기사입력시간 : 2004.07.09 10:27:07  ⓒ매일노동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