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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자동차산업이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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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연구원 자동차산업 보고서]

노사갈등-비정규직-격차확대 … 경영진 단기수익 집착 문제 악화  /  양적 성장 한계, 구조적 원인 … ‘업종별ㆍ지역별 노사정협의회’ 활용해야

“왜 수출은 느는데 내수는 침체되고 있을까. 우리나라 핵심 산업인 자동차 부분만 살펴봐도 해답이 나온다. 이대로 가다간 자본의 경제적 효율도 고갈되고 사회통합도 방향을 잃게 된다. 물론 노동자들의 일자리도 담보할 수 없게 된다. 지금은 위기 상황이고 노ㆍ사ㆍ정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노동연구원 조성재 연구위원)

우리나라는 현재 비정규직, 임금격차 확대, 노사관계의 대립과 불안정 등 숱한 노동관련 문제를 안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 한 가운데 자동차산업이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자동차산업은 국민 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전국적 노사관계의 중심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영향력이 상당하다.

▲ ⓒ 매일노동뉴스 자료사진

한국노동연구원(원장 이원덕)은 26일 ‘자동차산업의 도급구조와 고용관계의 계층성’(조성재ㆍ이병훈ㆍ홍장표ㆍ임상훈ㆍ김용훈)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업종별 노사관계의 문제점을 심층 진단하고 개선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연구보고서는 특히 노동자간 임금격차 문제가 정부와 재계가 흔히 주장하는 ‘대기업노조 이기주의’ 때문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로 발생하고 있다는 지점을 지적하고 있다. 아래는 보고서의 주요 내용이다.

도급구조 확대 노동자간 격차 벌려

자동차산업의 고용관계는 오랫동안 도급구조(사외도급, 사내도급) 형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러한 구조가 외환위기 이후 더욱 공고화, 차별화되면서 노동시장, 노사관계의 차이를 더욱 강화시켰다. <표 참조> 특히 원청이 사내하청노동자를 채용하듯, 1차 부품업체, 2차 부품업체에서도 고용관계에 있어 사내하청을 사용함에 따라 한 회사에서 일하는 노동자들간 임금 등 노동조건 격차가 더욱 벌어지게 된다.<그림 1>  

이와 관련 보고서는 “이러한 격차로 인해 자동차산업 평균임금은 제조업보다 높은 수준이 지만 100인 미만 기업들은 제조업의 같은 규모 기업 임금보다도 낮다”며 “도급구조의 심화와 확대로 그 부담이 최하층에까지 미쳐 최저생계비 정도에 불과한 임금 등으로 이들의 삶을 더욱 어렵게 했다”라고 지적했다.

한편 이렇게 도급구조가 심화, 확대되고 노동자간 격차가 기형적으로 벌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보고서는 단기적인 수익성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경영행태와 그로 인한 도급구조상 하부 혹은 외부로의 부담 전가 및 기업간 지불능력 격차 심화를 주된 원인으로 진단하고 있다. 단기수익을 목표로 완성차업체의 제조원가는 최대한 억제되고 이것은 단가인하로 이어졌으며 부품, 사내하청업체들은 인건비 절감에 ‘사력’을 다하게 된 것이다.  

보고서는 “이러한 고용구조의 변화는 사용자들이 정규직 고용에 대해서는 안정성을 보장하면서 비정규직 고용으로 양적 유연성을 확보하려는 전략에 의해 강화됐다”며 “아울러 정규직 중심의 기업별 노조 역시 이러한 사용자의 전략을 적극적으로 저지하지 않거나, 실패하면서 고용구조의 계층화를 초래하는 데 일조했다”고 분석했다. 나아가 이러한 단기 이익극대화 전략이 투자 자체를 위축시켜 경제침체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반복되는 악순환, 탈출구는 없는가

“정규직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외부의 2차 노동시장(비정규직)으로 떨어질 위험이 상존하는 가운데 자본은 해외로 이동하고 있다. 또한 고임금에도 불구하고 장시간 근로와 소외된 노동과정은 ‘일의 보람’과 ‘생활의 즐거움’을 보장해 주지 못하고 있다.” 보고서는 그나마 ‘안정성’을 보장받고 있는 정규직노조도 사용자에 대해 대립적인 자세를 취하고 단체행동에 적극 참여할 수밖에 없다며 “이들에게는 ‘벌 수 있을 때 최대한 벌고 보자’는 경제적 보상으로 노동의 피폐함을 보상받으려는 동기가 작용하게 된다”고 진단했다. 결국 작업장 내 교섭력에서 밀려 고임금과 인력운영의 경직성에 직면한 사용자는 도급구조를 통해 그 부담을 돌리려는 움직임을 강화함으로써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는 것이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원청의 이러한 노사 전략 관행이 1차 부품업체 등 하부로 그대로 모방ㆍ전파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숙련과 기능을 극대화하는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 없이 설비, 기술에 대한 지원만 할 경우, 10년이 지나지 않아 중국과 같은 후발경쟁국에 추월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서는 경고한다.

연구팀은 “자동차산업의 경우 단기적이고 협소한 이해관계에 집착한 결과가 동태적 효율성과 경제의 건전성을 악화시키고 있다”며 “노동문제 해결뿐 아니라 경제 전체의 성장성과 건강성을 회복하기 위해 자동차산업의 도급구조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업종별 노사정협의회 활용 제안

이러한 자동차산업의 구조는 ‘특별한 계기’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장기 효율성이 고갈되고 사회적 통합성이 붕괴될 때까지 지속될 것이라고 보고서는 진단하고 있다. 이에 따라 노조가 적극적으로 나서 시스템을 바꾸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아직 산별노조는 ‘갈 길’이 먼만큼, 업종별ㆍ지역별 노사정협의회를 활용할 것을 제안했다.

보고서는 “업종 단위의 노사정 협의를 활성화하면서 완성차 노조가 사내 도급 노동자에 대해 대리교섭을 수행해 왔듯, 사외 도급 노동자에게도 연대 정책을 구사하는 것이 현실적인 추진력을 부여하게 될 것”이라며 “자동차업종의 노사정협의회는 고용관계 전반에 대한 혁신을 이루는 매개체의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업종별 협의회의 의제로는 자동차산업과 관련한 공정거래정책, 산업정책, 금융정책, 복지정책 등 요구를 강화해야 한다며 △도급구조 혁신 △네크워크 전체가 노동 포섭적인 생산방식 채택 △자동차산업 임금격차 축소 장기 계획(예를 들어 10년) 수립 △실 근로시간 단축 △임금체계 개편 등을 제시했다. 또한 현재 사내도급과 같은 비정규직은 유사한 직무를 정규직과 함께 수행한다는 점에서 불법파견이나 위장도급일 가능성 높아 단계적으로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며 사회복지 확충도 점진적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볼 때 연구팀의 보고서가 지적하고 있는 문제점들은 금속산업연맹이 최근 제기하고 있는 산업 차원의 전략 논의와 일정한 접점을 형성하고 있다. 노조의 입장에서도 사내하청과 비정규직이 확대되고 정규직의 고용불안 심리가 함께 발생하고 있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단위노조를 넘어서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와 연맹이 2003년 발간한 금속산업 사내하청 실태조사 보고서에서도 “생산과 고용의 변동에 관한 노조의 전략을 수립함에 있어서 산업차원의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와 역량을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번 연구를 주도적으로 맡아온 노동연구원 조성재 연구위원은 “노조가 실천해야 할 과제도 많지만 많은 부분에서 사용자의 결단이 필요하다”며 “단기적인 효율성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 효율성과 기업들의 사회적 책임을 감안해 산업 전략 자체의 패러다임 전환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조 연구위원은 “이제 한국의 양적 성장은 한계에 도달했다”며 “당장 모든 것이 이뤄지지 않겠지만 더 늦기 전에 질적 성장을 위한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소연 기자

ⓒ매일노동뉴스 2004.04.27 16:59: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