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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 국회입성, 노사관계 달라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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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대화 병행 노동과제 개혁 가속화
경제우위론 빠질 땐 본질적 변화 한계 … 당-노조, 양동전략 구사할 듯
지난 17일자 한 스포츠신문은 두 장의 사진을 대비시키며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출’ 의미를 다시금 환기시켰다. 하나의 사진은 지난 2001년 5월 국회에서 개혁법안 조기처리를 요구하는 기자회견 중 단병호 당시 민주노총 위원장이 국회 경위들에 의해 들려나가는 모습이었고, 또 다른 사진은 지난 15일 개표결과를 보며 박수를 치는 그의 모습이었다. ‘3년 전엔 쫓겨나고 오늘은 ’금배지‘’를 제목으로 단 이 두 장의 사진은 단병호 등으로 상징되었던 노동운동에 앞으로 어떠한 변화가 있을지 암시하는 것이기도 했다.


▲ 연행될 당시와 개표당시의 단병호 당선자 ⓒ 굿데이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출은 우선 제도권 ‘밖’에서 외쳐졌던 노동자들의 이해와 요구가 굴절없이 반영될 수 있는 ‘원내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노동계의 발언권(voice)를 상당히 높일 것으로 보인다. 이는 노동을 의도적으로 ‘배제’해왔던 정치권의 전략에도 전면 수정을 불가피하게 함으로써 ‘노동’이 우리 사회 주요한 정치적 세력으로서 인정받게 되는 계기가 된다. 또한 ‘조직된 대중 중심의 요구와 투쟁’에 집중해 왔던 노동운동의 활동 방식에서도 ‘미조직 노동자까지 포함한 정책대안 마련’과 ‘대화와 교섭’의 무게를 싣는 노동운동 그 자체의 변화도 함께 초래하고 있다.

노-정 관계, ‘정공법’의 승리

그동안 노동계가 의회에 진출하는 방식은 정부와의 협조를 기반으로 국회 의석을 보장받고 각종 정부위원회에서 자신들의 자리와 지분을 챙기는 것이었다. 한국노총이 그러했다. 그동안 민주노총의 조직적, 사회적 성장에 따라 정부 위원회의 노동계 몫 일부가 민주노총에게 할당되기도 했지만 한국노총 중심의 정치참여 방식이 전면 변화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는 양대 노총 모두 독자정당을 중심으로 정치세력화를 꾀했고, 특히 민주노동당이 조직된 노동대중을 포함, 300만명에 가까운 ‘국민들의 지지’를 통해 의석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그 궤를 달리 한다. 민주노총은 진보정당을 통한 독자적 의회진출이라는 ‘정공법’을 택했고, 이러한 자신의 성과를 바탕으로 다양한 제도권 영역에 목소리를 확대해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노-정 관계의 또다른 변화를 예고한다.

또한 개혁과 보수가 공존하는 정부와 집권 여당 정책의 변화도 일정하게 추동해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점진적이지만 균형점을 찾아내는 과정이라는 분석도 있다.

박태주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참여정부는 사회통합적 가치를 강조해 왔는데 경제정책에 있어서 일방적으로 효율성의 목소리가 컸다고 한다면 이제부터는 분배, 형평성, 연대의 목소리를 정확히 전달함으로써 정부 정책의 균형을 잡아주는 것이 민주노동당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장외’에 있었던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제도권’ 진입은 현실 정치에 대한 ‘감각’을 키워줌으로써 보다 책임있는 노동운동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노민기 노동부 노사정책국장은 “민주노동당의 약진이 부정적인 것은 아니”라며 “민주노총은 그동안 정부가 내놓은 공무원노조법, 비정규직보호입법 등을 비판적으로 바라봤는데, 경제논리가 지배하는 현실 정치판에서 노동부의 안조차 상당한 수정을 거쳤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노 국장은 “민주노동당의 메시지는 크겠지만 정책을 변화시키는 데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며 “우리 사회를 개혁해 내기 위해 거대 여당, 보수 야당 사이에서 어떤 포지션을 취할지 주목해서 볼 것”이라고 말했다.

노-정 관계 변화에서 또한 주목되는 것은 노사정위원회의 역할과 위상 변화이다. 박태주 연구위원은 “민주노동당이 국회에 진출한 이상 친노동자 정당의 부재나 정부의 이행의지 결여라는 민주노총의 불참 명분이 크게 희석되었기 때문에 민주노총이 노사정위를 거부할 명분은 많지 않을 듯하다”고 말했고, 민주노총 한 관계자도 개인의견임을 전제로 “민주노총은 ‘의회’공간과 함께 산별교섭, 노사정위 등을 포함한 ‘사회적 대화’ 라는 양 날개 전략을 병행해야 한다”며 “그래야만 개혁의 촉매제 역할을 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사 관계, “정치적 해결이 효율적”

그동안 개별 사업장이나 산업별 차원의 노사관계에서 노동조합이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는 수단은 파업 등의 단체행동이 거의 유일한 것이었다. 사회적 이슈화이팅을 통한 제도개선 등의 다른 압박수단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국정감사나 국회의원 활동을 통해 노사갈등이 심각한 개별 기업에 대한 청문회, 부당노동행위 사업주 증인 출석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한 압박이 가능할 것이다. 이에 대해 기업들은 ‘시달림’을 당한다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의회를 통한 노-사 갈등의 일정한 해소는 파업을 통한 실력행사라는 ‘경제손실을 초래하는’ 산업적 방법의 의존도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재계에게도 긍정적이라는 분석도 가능하다. 이는 노동계가 추진하고 있는 산별교섭에도 사용자의 참여를 촉진시킬 여지를 제공하기도 한다.

하지만 재계는 노동계가 장외투쟁 중심에서 제도권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합리적인 대안을 내놓지 않겠느냐는 기대 속에서도 경제 전반에 ‘친노동’ 기류가 사회적 갈등을 오히려 높이고 기업의 투자의욕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점에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지난달 전경련이 전국 205개 회원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노동계 정당의 국회 진출이 “노사관계 법제도 입법이 노동계에 훨씬 유리하게 될 것”(40.8%), “정치투쟁이 더 심해질 것”(31.8%)이라고 꼽기도 했다.


▲ⓒ 매일노동뉴스


노동개혁 과제들, 보수벽 넘을까

하지만 물가가 치솟고 높은 실업률이 계속 유지되며 기업의 투자가 위축된 현 경제상황 속에서 민주노동당이 바라는 노동개혁적 과제가 실현되기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민주노총 이상학 정책실장은 “사회복지 확충이나 부당노동행위 근절, 단결권 보장 등 부르주아 민주주의 수준의 개혁은 일정하게 달성될지 모르겠지만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생존권 문제, 노동유연성 규제 등의 문제에서는 여전히 보수적 경향을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핵심적으로 비정규노동자 보호입법 방안에 대해 노동계는 △일정한 사유가 있을 때에만 기간제 노동 허용 △불법파견 근절 및 파견근로 폐지 △동일노동 동일임금 및 차별해소 △특수고용노동자 노동자성 인정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까지 정부가 보호방안이라고 내놓은 자료에서는 기간제 노동 사용제한을 두지 않으며 파견근로의 범위를 더 넓히고, 대신 차별을 줄이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따라서 일반민주주의 확보 차원의 개혁 이외에 경제‧노동 분야에서는 ‘보수성’을 유지할 수밖에 없어 ‘유연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추구하겠다는 집권 여당과 ‘노동자 생존권’을 주장하는 민주노동당, 민주노총과의 마찰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사용자 대항권 강화’, ‘노조 파업 무력화시키는 방안’이라며 노동계의 비판에 직면해 있는 노사관계 로드맵이나 미등록(불법체류) 이주노동자 문제를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채 시행을 불과 3개월여 앞두고 있는 고용허가제 문제 등에서도 공방을 거듭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이정식 한국노총 대외협력본부장은 “당선이 확정되자마자 단병호 후보에게 ‘비정규직 차별철폐’라는 꽃판이 전달되기도 했는데 그만큼 고용불안 해소, 실질임금 쟁취, 임금저하없는 주5일제 등에 관한 노동자들의 기대와 요구가 높다는 뜻”이라며 “보수정당과의 정책대결을 통해서 지지층들이 원하는 직접적인 변화를 추동해 내기 위해서라도 노동조직의 강력한 리더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당과 노동조합, 내부 로드맵 짜야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출은 또한 노동조합 운동 내부의 큰 변화도 함께 초래하고 있다. 사상 처음으로 독자정당 노선을 구현했던 한국노총은 기대했던 2% 득표에 실패함으로써 이남순 위원장을 비롯한 지도부의 사퇴 등 내홍을 겪고 있다. 또한 한국노총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대정부 발언권과 교섭권의 무게중심은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어 노동계 내 세력교체도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를 두고 양대 노총 통합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고 분석하는 쪽도 있지만 민주노동당 노회찬 당선자는 “양대 노총의 통합 문제는 단순히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평면적이고 근시안적 차원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공세, 고용‧비정규직 문제 등 당면한 큰 과제를 놓고 어떻게 넓게 전선을 치고 싸울 조건을 만드느냐라는 차원에서 접근돼야 한다”고 말한다. 노 당선자는 “지난해 손배가압류 철폐, 비정규 차별철폐 등을 요구하며 많은 노동자들이 분신, 자살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노동운동의 위기가 빚어낸 아픔”이라며 “이제는 노동자 진보정당의 원내진출이 실현된 만큼 양분된 노조운동을 하나로 모아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한다는 차원에서 통합 등의 문제가 고민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민주노동당이 민주노총의 조직적 기반 위에 창설된 조직이긴 하지만 의회활동과 대중조직 운동은 그 범주를 달리하는 것으로 역할분담과 공조의 방식도 어떻게 짜여질지 관심이다. 이상학 실장은 “당과 노총은 기본적으로 협조, 동반관계이기도 하지만 긴장관계이기도 하다”고 말했고, 박태주 연구위원은 “민주노동당이 민주노총의 단순한 정치적 전위부대가 아니듯이 민주노총도 민주노동당의 동원대상이 아니”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노회찬 당선자는 “조직된 노동자 중심의 대중조직에게만 노동문제의 모든 것을 맡겨서는 안된다”며 “당과 노동조직의 공조를 더욱 강화해 입법이 필요한 일, 입법을 막아내야 할 일 등 관한 우리 내부의 로드맵을 짜서 치밀하게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희 기자(goforit@labornews.co.kr)



ⓒ매일노동뉴스 2004.04.19 11:0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