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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자정리
| [해당화] | 조회수 423

콩깍지를 태워 콩을 삶는 일을 멈춰라

오늘은 오래전에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참으로 어려운 이야기다.
투쟁으로 박살내자...라는 이야기는…….
어설픈 투쟁은 투정으로 비추어질 수가 있고,
그러한 투정은 명분도 없고 실리도 없다.
재앙에 가까운 무더기 징계로 현장이 치른 대가는 너무나 혹독하였다
징계에 맞선 또 다른 투쟁은 오히려 현장의 동요와 저항마저 불러왔으나
참혹한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노동조합의 지침을 따른 투쟁이 자랑스러운 훈장이 되어야 마땅하거늘
어찌하여 그것이 걸림돌이 되고 상처가 되어야 한다는 말인가?

가치 없는 희생.
몇 명은 투쟁가로서 자신의 명성을 드높이는데 성공했겠지만,
그에 따른 고통은 고스란히 순박한 조합원들의 몫이었다.
공식적인 조직을 통하여 결의[決意]는 물론
동의[同意] 를 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절차는 철저히 무시 되었다.
제대로 된 컨트롤 타워도 없이 투쟁은 독려되었고,
즉흥적인 무리수에, 환호하고 열광하는 무리들 속에서
맹수는 헛점이 노출된 몇놈을 노려 처참하게
숨통을 끊어 버리고 다리를 분질러 놓았다.
지휘하고 통제해야 할 사람이 왕따가 된 희한한 싸움에
투쟁의 대오는 스스로 분열이 된다.
덧셈을 해도 모자랄 판에 뺄셈에 몰두 하고 있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적과 동지를 구분할 수도 없고 투쟁의 목적과 명분조차 헷갈리기 시작한다.
회사가 짱구인가?
없는 허점도 만들어 조질 판에 훤히 드러난 허점을 그냥 놔두게?
노동조합은 세월이 갈수록 덩치가 커지면서
시끄럽게 분열을 해 온 대신에
회사의 노무관리는 낮은 포복을 하며
소리도 없이 진화해 왔다는 사실을 왜 몰랐을까?

첫차를 탔건 막차를 탔건
모두가 똑같은 조합원이고 균등한 한 표를 행사한다.
그러나, 노동조합의 존재 이유와 태생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도 하지 못한채 갑질하듯 마구 권력을 휘둘러 대며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려는 짓은 더 이상 반복하지 않기를 정중히 요청한다.
그와 같은 짓은,
풍찬노숙만 하다가 회사를 떠나버린 존경하는 선배님들에 대한 모독이다.
이 길을 앞서서 간 선배들은 존경 받지 못할 수 도 있지만
그렇다고 그대들에게 비웃음을 당할 만큼 어리석지도 않았다.

절실함을 잃어버린 현장은 무기력에 젖어 들었다.
거짓으로 굽신 거리는 관리자들의 읍소와
권력의 달콤함에 고무되어 어슬렁거리는 완장들 덕분에
노동자의 가장 소중한 가치인 "노동의 신성함" 마저 퇴색 되어 버렸다.
기본이 무너지고 가치가 훼손되면 조직은 쇠락의 길로 가는 것이 정설이다.
신입사원 시절, 밤이슬 맞으며 시작한 노동조합, 이제는 관전자가 되어야 하는

나의 눈에 비친 노동조합의 앞날은 너무나 안타깝다.
무임승차하듯 만들어진 권력에 쉽게 올라탄 권력은,
담금질 하지 않은 칼날과 같아서 쉽게 무디어 지는 법이다.
세상이 변하고 시대와 格은 다르지만
지금이라도 분열된 현장을 추스리고 현장에 밀착해라.
그것이 전환기의 노동운동을 대하는 활동가의 마땅한 자세일 것이다.
아주 오래되어 이제는 빛 바랜 나의 건배구호처럼
"답은,현장에 있다"

사랑하는 후배님들아
나를 정년까지 이르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모질게 굴었던 까칠한 선배의 글은
여기서 접습니다
다음에 만나면 꼭 짬뽕 한그릇 합시다

2020년 12월29일 퇴직전야에
서울에서 [해당화] 드림

글 제목은 조식의 "칠보시"에서 가져왔습니다

※삶은 희망입니다